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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작가

장민숙 JANG Minsook 1967

 장민숙

장르

색면추상화

학력사항

  • 1989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심리학과 졸업

평론글

산책자의 시선과 풍경의 진화
- 장민숙의 회화가 걸어온 길


집을 읽는 산책자의 시선

오래 전 장민숙 화가의 <산책> 한 점을 구입해 잘 보이는 벽에 걸어두었다. 화면 가득 크고 작은 집들이 평면적으로 구성된 풍경화였다. 서정적 분위기와 따뜻한 색감, 자유로운 터치 등으로 편안한 온기를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림 속의 집들은 저마다 표정을 지니고 있어서, 눈처럼 보이는 두 창문과 입처럼 보이는 문을 통해 무슨 말인가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집에 앉아 있어도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는 사람의 마음이 되곤 했다. 이렇게 <산책>이라는 그림을 산책한 끝에 <창문성>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그녀는 집의 표정을 잘 읽어낸다
창문성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것이 있다는 듯
집마다 눈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풍경을 삼키기도 하고 내뱉기도 하는
내면을 감추기도 하고 들키기도 하는
저 수많은 창문들은
집의 눈빛일까 입술일까 항문일까 - 나희덕, <창문성> 부분

일찍이 “집을 읽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가스통 바슐라르였다. 그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이란 “한 영혼의 상태”를 잘 보여주며 “집은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 통합에 있어서 연결의 원리는 ‘몽상’이다. “더할 수 없이 깊은 몽상 속에서 우리들이 태어난 집을 꿈꿀 때, 우리들은 물질적 낙원의 그 원초적인 따뜻함, 그 잘 중화된 물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민숙의 회화에서도 집이 지닌 원초적인 충족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부드러운 몽상을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
박준헌의 표현처럼 “그의 화면에서 빼곡한 집들은 벽돌을 재료로 삼아 이를 쌓고 올려 집을 짓는 것처럼, 기억을 쌓고 하나하나의 세계를 쌓아올린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사각형과 삼각형, 큐빅화된 형태로 기호화된 집은 보는 이에게 그 표정을 읽어낼 것을 요청하는 듯하다. 그 형태들은 산만하게 흐트러진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질서 안에 연결되어 있고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구상화된 집들은 또다른 터치에 의해 지워지고 합쳐져서 집의 내부를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그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깊이감과 입체감이 생겨난 화면은 역동적인 붓과 파스텔, 나이프 자국 사이로 비쳐나오는 색채들로 인해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함축적 풍경이 된다.

이국적인 풍경에서 내면의 풍경으로

장민숙의 회화작업은 2006년 첫 개인전부터 최근 전시에 이르기까지 ‘산책’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해왔다. ‘산책’ ‘flaneur’는 작품의 제목이자 주제일 뿐 아니라 작가가 풍경을 발견하고 바라보는 위치와 관점, 태도 등을 대변한다. ‘flaneur’는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정작 그의 그림에는 산책자나 행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산책자의 시선은 풍경 밖에, 그리고 캔버스 밖에 무심히 존재한다. 산책자가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덕분에 풍경은 독립성을 갖게 되고, 누구나 그 풍경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도록 시선의 길을 열어준다. 창문을 통해 집의 내부를 엿보거나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실내의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그림이 없는 걸 보면 작가는 오히려 집이 지닌 비밀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의 그림에 사람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집은 각 사람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자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조금 낡고 오래된 집들은 녹녹치 않은 내력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 깃든 기억을 조금씩 들려준다. “나는 살아가고 있고, 삶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색면으로 기록한다”는 작가에게 집과 거리는 도시의 공간성과 시간성, 수직성과 수평성, 기억과 풍경을 동시에 아우르는 중요한 상징이자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집을 읽어내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행위가 바로 ‘산책’이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여행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에게 산책은 자기만의 집, 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독자의 내면 탐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마치 타자의 내면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집의 표정을 살피고 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침착하게 귀를 기울인다. 이런 대화적 태도나 소통의 확장은 색의 명도나 채도의 변화로 나타나기도 하고, 잘 정돈된 선들의 탈주나 방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초기작에서 아주 작고 검은 빛에 가까웠던 창문이 점차 커지고 투명해지면서 내부를 조금씩 열어가는 모습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산책자의 사유를 카메라의 시선에 비유하면서, 세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감이나 소외가 오히려 산책자의 관찰을 확장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거리산보자의 귀환>(1929)이라는 글에서 뛰어난 산책자였던 프란츠 헤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경—거리산보자에게 도시는 사실상 풍경이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 도시는 변증법적인 양극으로 나뉜다. 즉 도시는 거리산보자에게 풍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를 감싸는 방이 되기도 한다.”
유년기부터 베를린에서 성장하고 거주해온 헤셀에게 베를린의 풍경은 여행자가 발견하는 이국적인 풍경과는 아주 다르다. 그에게 풍경은 묘사되는 게 아니라 이야기된다. 그곳에 깃들어 사는 이에게 산책은 거리 곳곳에 박혀 있는 기억과 만나는 일이며, 그 기억을 따라 자신의 삶과 도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이렇게 도시의 거리는 회상과 상상의 공간이 된다. 거리에서 산책자의 시선은 눈앞의 풍경을 향해 있는 듯하지만, 그의 내면은 줄곧 어떤 몽상의 방 속에 머물러 있다.
거리산책자 장민숙은 도시의 스펙타클한 풍경이나 신기한 볼거리들을 향한 시각적 모험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무나 숲, 연못 등의 자연이 배경으로 등장한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화폭은 대부분 도시의 평범한 거리나 골목을 담아왔다. 그리고 이 내성적인 산책자의 시선은 이방인의 것에서 거주자의 것으로 조금씩 이동해왔다. 초기의 그림들이 다소 어두운 색감으로 유럽의 뒷골목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면, 그 이국적 서정의 에스프리는 점차 줄어들고 단순화되면서 추상에 가까워졌다.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산책자의 시선은 풍경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고 풍경의 외관보다는 내면에 깃들어 있는 느낌이나 감각에 집중한다.


< 산문적 구상에서 시적 추상으로 >

내 나름으로 장민숙의 작업과정을 추측해 본다면, 먼저 기본 색면을 조성하고 그 위에 문과 창문을 중심으로 집들의 형상을 앉힌 후에 다양한 색을 축적함으로써 풍경을 조형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집의 형상들은 초기의 사실적인 구상에서 도형에 가까운 추상을 향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왔다. 달리 말해, 산문적 구상의 세계에서 시적 추상의 세계로 건너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섬세한 선을 중심으로 한 사실적 묘사는 점차 면의 기하학적 분할과 색채의 탐구로 이어졌다.
이렇게 추상화의 경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부터인 듯하고, 2017년 전시에서는 색채 자체가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실제로 이 시기의 그림들에는 ‘flaneur’라는 제목 뒤에 ‘cadmium red’ ‘titanium white’ ‘permanent green pale’ 등과 같은 주조 색의 이름이 덧붙여져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거리를 거니는 산책자의 시선이 아니라 색채 자체가 산책의 주체가 된 것이다.
2019년 개인전 <통제된 무질서(Controlled Disorder)>에서는 좀 더 대담한 색면추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전시의 해설에서 김태곤은 “색면의 정적이고 신비한 성격과 색채 자체의 직접성, 자율성을 추구했”던 마크 로스코와 달리, 장민숙의 회화는 “거대한 캔버스에 잘게 나눠진 사각 형태의 모호한 경계와 낮은 채도의 화면을 배열함으로써 단순한 캔버스 표면이 아닌 그 속에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이 깊이 담겨진 원초적 삶의 울타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캔버스 위에서 다양한 비율과 조합을 보여주는 사각의 형태들은 자유와 통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자칫 단조롭거나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구성에 생기를 부여하고 엔트로피를 높이는 것은 발랄한 색채감이다. 그러면서 스케일이 큰 색면추상에 집중하게 되는데, 2020년 전시에서는 ‘flaneur’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지고 ‘White’ ‘Neutral’ ‘Blue’ 등의 색채가 제목을 대체한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과정은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추상이 탄생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장민숙에게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탐구의 매개체가 ‘집’이었다면, 몬드리안에게는 ‘나무’가 매개체 역할을 했다. 몬드리안의 <붉은 나무>(1908)에서 푸른 바탕을 가득 채운 한 그루 나무는 검은 윤곽선과 붉은 색채의 대비로 인해 나목이지만 강렬한 파토스를 발산한다. 그런데 <회색 나무>(1911)와 <꽃이 핀 사과나무>(1912)에서는 색채감이 거의 사라지고 나무의 형태 또한 단순화된다. 나무와 허공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 지다가, <나무>(1912)나 <구성 no.2>(1913)에 오면 나무의 구체적 형태는 사라지고 수많은 사각 형태로 분할된 기하학적 화면만 남게 된다. 그러나 몬드리안 회화에 나타난 나무의 진화과정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그 추상적 도상 속에 여전히 나무 한 그루가 ‘정신’이라는 형태로 남겨져 있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장민숙의 회화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아온 것처럼 보인다. 기억의 집적체로서 집과 거리를 구축해가던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는 해체 또는 지우기의 방법을 좀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를 지운다는 것은 그 아래 남겨진 대상이나 풍경을 더 인상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성스럽게 밑작업이 된 거대한 캔버스 전체를 한 가지 색채로 뒤덮어가는 과정에서 한 방향을 향해 움직여간 붓자국은 속도감과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뭉개진 풍경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원색의 강렬한 색채감은 그 자체로도 압도적이지만, 그 덧입혀진 색채 아래로 드러난 크고 작은 점들이 내게는 도시의 무수한 창문들처럼 보인다.
집에서 출발한 장민숙의 그림은 이제 집을 소재로 한 회화가 아니라 회화 자체가 하나의 집이 되어 수많은 창문들을 갖게 되었다. 마치 천 개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 얼굴처럼. 그러니 선에서 면으로, 다시 면에서 점으로 부단히 이행해 온 이 회화적 여정을 나는 ‘풍경의 진화’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이 과묵한 산책자는 지금도 캔버스의 고독 앞에서 자기만의 집을 찾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민숙의 산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Featured Artworks “장민숙” 작가의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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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mag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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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x 100.0 cm (39.4 x 39.4 in)

캔버스, 오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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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sevres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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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x 100.0 cm (39.4 x 39.4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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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antique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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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x 100.0 cm (39.4 x 39.4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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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flaneur
flaneur

45.0 x 45.0 cm (17.7 x 17.7 in)

캔버스, 오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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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flan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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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장민숙

Bio

  • 2021 대백프라자 갤러리 초대 ( 대구 )
  • 2021 갤러리 마리 초대전 ( 서울 )
  • 2020 갤러리 전 초대전 ( 대구 )
  • 2020 가나아트 포럼 스페이스 초대전 ( 서울 평창동 )
  • 2019 대백프라자 갤러리 초대전 ( 대구 )
  • 2019 박영덕 갤러리 초대전 ( 서울 )
  • 2017 갤러리 전 초대전 ( 대구 )
  • 2017 이정 갤러리 초대전 ( 서울 )
  • 2016 아트팩토리 초대전 ( 서울 )
  • 2014 갤러리 전 초대전 ( 대구 )
  • 2011 갤러리 루벤 초대전 ( 서울 )
  • 2010 통인 옥션 갤러리 초대전 ( 서울 )
  • 2021 단편전 갤러리 루벤
  • 2018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정수대상 ( 문화부장관상 )
  • 2020 대구아트페어
  • 2016 KIAF
  • 2017 ART BUSAN
  • 2017 화랑미술제
  • 2016 부산국제 아트페어
  • 2016 화랑미술제
  • 2014 Asia contemporary Art Show Hong Kong
  • 2014 LA Art Show
  • 2014 아트광주
  • 2013 Bank Art Fair Hong Kong
  • 2012 Art Asia
  • 2012 부산 국제 아트페어 특별전
  • 2012 Asia Contemporary Art Show Hong Kong
  • 2012 Art Kyoto
  • 2011 Zurich Art Fair
  • 2011 ASIA TOP Gallery Hong Kong
  • 2011 SOAF
  • 2011 KCAF 한국현대미술제 (예술의 전당)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대구미술관
  • 남해군
  • 경주시
  • 정수문화재단
  • WorldChem,Corporation
  • 삼화여행사
  • Gilead Sciences
  • 편강 한의원(서울}
  • 기쁜마음치과 (반포 서울)
  • (주)지오씨앤아이
  • (주)영진 레미콘
  • (주)동양구조안전기술사사무소
  • (주) LOG
  • (주) 경동에너지
  • 채송화 유치원(대구)
  • 2014 CITE 파리국제예술공동체 입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