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남 Sang Nam Park 1961
사람들은 예술은 지적능력이나 개념의 정립보다는 순수한 직관적 감성에 창조된다. 쟈크 라캉이란 철학자는 인간은 기표(signifier)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미끄럼을 타는 존재라고 했다. 추상 화가였던 칸딘스키도 창작행위의 근원적 동기를 내면적인 필연성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박상남, 그는 매일같이 길바닥 위를 걸으면서 미끄럼을 타는 그런 숙명적인 존재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화가이기 이전에 상처를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르네위그에 의하면 인간은 현실의 이상이 결코 만족시켜줄 수 없는 감정들을 그의 영혼에 지니고 있으며, 예술가는 이 감정들에게 하나의 형상과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박상남은 거리의 무수한 많은 자국(tache)와 흔적(trace)들 사이를 오고 가며 도시의 많은 얼굴들, 패여져 있는 도로의 빗물 등 에까지 그 감정들을 나누어주고 있다. 화실을 나오면서 차에 탈 때까지 따라 나오는 몇개의 그림들이 있었다. 박상남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화폭에 얼룩진 그림들이 말을 건내고 있었다. 그 길거리에 얼룩들은 참으로 소박하고 진지했다. 오랜간만에 가져보는 감동적인 얼룩과 상처들이다. 거리의 상처가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박상남 대문이 아니라 박상남이 가슴속 그 뜨거운 상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 김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