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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작가

김정범 Kim Jeongbum 1962

 김정범

학력사항

  • 198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동대학원 졸업
  • 1991 파리국립미술학교 수학

평론글

그것은 도예가 아니다.


폐기물이 문화로 되돌아가면서 무가치한 것은 다시금 가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 있는 것은 비가치로 보일 수 있다.
-빌렘 플루서, 그림의 혁명-


벌써 20년이다. 김정범 작가와의 인연도. 그의 작업은 전위적이지만 기존 개념의 전복이나 일시적인 실험적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은 도예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청화’나, ‘도자기’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거나, 또는 전통 도예/현대 도예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분류하여 이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색이나 형태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던적인 예술 개념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보다 그의 작업은 도자 재료와 일상의 재료들을 보다 근원적으로 사유하는 포스트모던적인 예술 개념의 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은 색채나 형태에 대한 재해석뿐만 아니라 탈장르, 아니 그보다 폭넓게 인문학적인 해석으로 확장해서 탐구해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작업은 한마디로 말해 ‘해체’와 ‘재구축’이다. ‘해체’는 모던 시대의 학문적인 패러다임을 통해 분류했던 범주들(예술, 사회, 종교....)을 하나하나 분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재구축’은 해체한 것들을 이전의 개념들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 범주들을 횡단하여 그 의미들을 새로운 개념으로 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해체와 재구축은 그의 작업에서 우리 자신을 역사적인 문화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탈역사적인 문화로 이해하는, 또는 선형적인 사유에서 비선형적인 사유로의 이해하는 주요한 매개고리이다.
그의 작업들은 <Blue Ocean, 2021>이나, <Blue Head, 2020>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작품들의 의미들이 서로 연결되어 내러티브의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의 작업은 <Blue Ocean, 2021>의 작업에서 보듯이 작품 하나하나로도 독립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업은 <Blue Ocean, 2021>의 작업에서 보듯이 단순한 기호들을 내재한 하나의 시(詩)와 같다. 하지만 그 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기호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가 그에게 부여한 기호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자신이 부여한 기호들로 그 자리에 대체하고 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성된 것들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Blue Ocean, 2021>의 작업은 둥그런 노란 판 위에 그림의 기호들을 단순하게 배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단순한 배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노란 색의 둥그런 판은 아크릴 색으로 칠한 것이며, 그림의 기호들은 화장토로 분장된 도자 작품들이다. 이 두 개의 조합은 현대미술에서 함께 배치될 수 있지만, 모던의 예술 개념에서 보면 이 두 개의 조합은 하나의 그림에서 쉽게 배치될 수 없는 개념이다.
또한 <Blue Ocean, 2021>의 둥그런 노란 판은 그림 기호들이 배치된 위치들을 보면 시계의 원반을 상징화한 것이며, 그림 기호들은 사람들의 약속 기호들인 숫자들을 대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림 기호들은 우리가 숫자로 인식하던 일상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0과 1의 디지털 기호로 작동하는 컴퓨터의 화면과 같이 비선형적으로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회화와 도자 작업을 하나의 장르로 융합하는 개념은 철조로 된 어린아이의 두상들과 닭의 조형물을 융합한 작업에서는 조각과 도예의 작업을 하나의 작업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약속 기호로 상징되는 숫자로 된 시간 개념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명체의 생체 리듬으로 확장하여 해석하고 있다.
해체와 재구축은 그의 작업에서 예술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Blue Head, 2020>의 작업에서 보면 ‘해체와 재구축’의 의미는 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물들과의 융합을 통해서도 그 의미들은 재구축된다. 그것은 <Blue Head>의 작품에서 보듯이 철물점에서 파는 공구들을 두상과 융합함으로써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익숙해 있는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다가오게 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장르적 개념만이 아니라 <Unknown Lady>의 작업을 통해 고전문화와 대중문화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도자 접시에 18세기의 벨라스케즈의 초상화를 차용하여 제작한 <Unknown Lady>의 작업은 캔버스로 작업한 그림과 같이 둥근 원형의 테라코타로 된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은 <Apollo>의 작업에서 보듯이 익살스러움과 위트이다. 익살스러움과 위트는 작업 전반에서 제기하는 의미들에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적인 것들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Apollo>의 작업에서 익살스러움과 위트가 잘 드러나는 것은 도자 접시의 형상이다. 도자 접시는 <Unknown Lady>의 작업에서는 캔버스로 사용되고 있지만, <Apollo>의 작업에서는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어 우주선의 프로펠러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한 익살스러움과 위트적인 요소는 사각형의 도자들로 이어 붙인 조각들을 우주선의 본체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색은 코발트 블루를 포함하여 파란색이다. 도예 분야에서 청자를 연상시키게 하는 파란 색은 그의 작품에서 전통적인 의미들로 재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작품이 비기능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종종 두상의 형태를 사용하거나, 그렇지 않은 기능(도자의 전통 문양)과 또 다른 오브제와의 결합을 암시한다. 이러한 명백한 긴장감은 예술 대 공예 개념이 있는 내가 선택한 도자기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나 또는 전체 맥락에서 볼 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두상, 카타콤브, 바로크, 장수하늘소, 해골, 시간, 삶과 죽음......등은 그의 작품들에서 그 개념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여 재구축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의미들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기호들이다. 그러한 해체와 재구축의 끊임없는 과정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가치들을 이념(모던적 이념, 자본주의 이념...)에 의해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인 가치들을 그대로 성찰하게 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2021.7

조관용(미술평론가, 미술과 담론 대표)



김정범 세라믹 아티스트: 시간을 다스리고 극복하는 법

고동연 (미술사가)

공예와 순수예술의 분류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20세기 초 유럽사회가 과거의 봉건적인 삶의 형태를 버리고 나아가는데 현대미술도 그러한 흐름에 합류해야만했다. 따라서 공예로부터 순수예술을 분류하고 우위에 놓으려는 시도는 단순히 미술사나 미술이론에서의 의미 이상을 가진다. 그것은 미술에서 과거 전통으로의 결별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려는 현대적인 시간 개념을 구현하려는 한 방식이었다. 물론 이러한 집착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 예술가들이 과거의 전통을 자신의 작업에 포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기술적 숙련도와 미술사에 대한 지식, 사랑, 열정이 필요하다. 이에 김정범의 세라믹 도기, 타블로, 설치 작업에 주목하고자 한다. 작가가 서구 회화사에서 나오는 명화의 이미지들과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청백자의 기술을 끊임없이 사용하면서도 시사적인 이슈,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의 테마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예 vs. 회화, 3차원 vs. 2차원, 도기 vs. 설치의 다양한 분류들을 혼용하는 김정범의 작업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가 현대적인 시간 개념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세라믹’이라는 인류 역사상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공예의 수법을 고수하면서도 표현적인 회화를 구현하거나 전구의 불들로 깊이를 알 수 없는 터널의 착시효과를 만들어 내고 시계판 후면의 부품을 재구성해서 배치하는 과정은 과거, 현재, 미래의 단선적인 시간관으로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백자의 현대적인 전용: 세라믹 도기
김정범은 세라믹 재료로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기법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작가의 태도는 기술적인 과정에만 있지 않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푸른색을 예로 들어보자.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인 지오토(Giotto)의 벽화에서 유래한 천상의 색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장 경건하고 차분한 정서적 반응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17세기부터 유럽 귀족층으로 확대된 중국 청백자 또한 흰색과 코발트블루 계열의 색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치 상인들은 동인도 회사를 차리고 중국의 청백자를 유럽 각지에 유행시키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여기서 푸른색은 고귀하고 이국적인 중국 도자기의 한 전형을 유럽인들에게 인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접시, 회화, 타일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100호 캔버스 위에 타일을 올린 <해골>(2018)에서 중앙에 붙여진 타일 뒤로 거대한 십자가 대열의 붓자국이 나 있다. 또한 도자기의 여백에 코발트블루와 고귀하고 값비싼 색상의 대명사인 금색의 즉흥적인 붓질이 등장한다. 여기서 붓질은 작가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붓질의 굵기와 방향성은 전통적으로 습득되어져온 기술보다는 작가의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상태를 반영한다. 보다 즉흥적이고 불규칙할수록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아울러 푸른색을 사용해서 그려 넣은 도자기의 모티브들 중에서 심상치 않은 것들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총이나 각종 작은 도구, 기계와 같은 ‘잡동사니’들은 영락없이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고 사용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김정범의 작업은 멀리서 볼 때는 전통 도기나 유럽의 모티브가 간간히 들어가 있는 중국 청백자를 연상시키지만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이질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다. 명화에 등장하는 거창한 귀족 복장을 한 인물들과 현대인들의 물건들이 숨은 그림처럼 혼용되어 있다. 때문에 그의 세라믹은 얼핏 여느 공예품처럼 보이면서도 작가의 표현적이고 창조적인 요소들이 퍼즐처럼 숨기고 있다.
순수의 시대에서 심연을 만나다: <Innocent>
이질적인 요인들이 공존한다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최근 제작된 <Innocent>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두상을 사용하여 왔다. 최근에는 외신에서 흔히 접하는 장면들이 결합되면서 재난 속 어린이들이나 난민의 참혹상이 연상된다. 실제로 타일 위에 그려진 장면에서 어린 아이가 밑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고 뒤쪽에는 거대한 폭발을 암시하는 버섯구름이 위치해 있다. 얼굴에서 이마가 차지하는 비중과 짧은 코, 둥그런 턱선은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두상이다. 그러나 중후한 김정범의 재료들과 만나면서 어린아이의 두상은 더욱 더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센터 피스에 해당하는 두상은 녹이 슨 굵은 와이어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여기서도 어김없이 오래된 재료와 현대적인 재료가 함께 사용된다. 어린아이의 두상은 시간적인 추이를 암시하는 녹슨 철사들로 암시되어 있는 것에 반하여 전체 두상의 하단부에는 장난감 바퀴와 같이 생긴 금속으로 된 바퀴가 달려 있다. 아울러 두상 내부 중앙에는 반사거울이 위치해 있다. 거울 위로 하단에 위치한 전구의 불빛이 반사되면서 거울 표면을 위에서 보게 되면 깊이의 환영이 만들어진다. 전구 빛의 열들이 거울 위로, 아니 아래로 뻗으면서 SF 영화에 나오는 통로가 생겨난다. 또한 유리 거울 위에는 화석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놓여 있다.
따라서 ‘순수하다’라는 타이틀이 부쳐진 어린아이의 두상 안쪽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펼쳐진다. 생경하게 달려 있는 전구의 열이 하단의 바퀴와 함께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는 샘이다.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유리거울과 위에 놓인 화석 또한 묘한 조합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된 시점과 그 이후 폐허의 이미지가 교차된다고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모든 시간적인 혼동이 ‘순수해 보이는’ 어린 아이의 두상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출발점에 위치한 어린아이는 이미 시간을 돌고 돌아 어른 그 이후의 존재가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지점에서
결국 작가에게 과거와 현재는 하나다. 과거는 끝없이 현재 속에서 발견되고 마찬가지로 현재는 과거의 언어를 끝없이 빌려온다. 시사적인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린 장면들이나 물건의 이미지가 ‘여기, 우리’를 상징한다면 이를 작가는 중국 청백자의 양식 속에서 구현한다. 전통 장인들처럼 작업의 세부적인 부분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과거의 전통에 예속시킨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간간히 들어가는 붓자국은 오래된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몸부림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시계 내부의 부품을 해체해서 시계의 겉면이 아닌, 겉면 너머의 모습을 구현한 <Blue Ocean>은 가장 단순하지만 직접적으로 시간을 다룬다. 시간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기재를 해체함으로써 시계는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흐르는 시간에 종속된 인간은 적어도 시계를 해체함으로써 그 시간성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것은 삶의 태도에서 보자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직선상에 놓인 시간적인 추이를 부정하는 것이며 암암리에 시간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구속으로부터도 벗어나려는 것이다. 즉 특정한 과거의 행동이 현재, 미래로 이어진다는 단선적인 사고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도예/예술가로서 40년 가까운 작업을 해온 작가가 개인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소재나 양식을 결합할 뿐 아니라 시간이라는 테마 자체를 다룬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작가의 여정을 특정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목적지향적인 행보가 아니라 결국은 그러한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보여진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내면에 위치한 두려움을 극복해가지 못한다. 유리거울에 지속적으로 반사되는 빛처럼 희망과 두려움은 지속적으로 공존하며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시, 공간을 극복해서 일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많은 기재를 갖게 된 현대인들은 더 더욱 시간에 쫒기고 시간에 얽매인다. 우리가 김정범의 <Innocent> 속 어두운 심연 속 전구의 빛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어떠한 존재인가?

2018, 7



<김정범>전
익숙한 그러나 생경한 청화
9.2~9.15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
|홍지수 미술학 박사, 홍익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김정범의 청화는 한국 현대도예가 이제껏 전통의 새로운 계승이나 재해석의 일환으로 해석해온 이미지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비싼 재료를 아끼기 위해 과감한 생략과 효과적인 상징을 고안하고 백색의 여백에서 단순함과 간결함을 도출하고자 했던 옛 도자의 조형정신을 복구하는 대신, 그는 옛 재료와 방식으로 그리되 오늘날 도자기 담아내야 할 사회일반의 요구와 담론을 가장 익숙한 그러나 가장 생경한 푸른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전시장에는 도판, 그리고 절규하는 손과 장화, 잠수 마스크, 기계 형상이 혼재된 모뉴먼트가 자리한다. 자유분방한 청색 붓질은 평면과 입체를 가릴 것 없이 백토 또는 화장토를 분장된 하얀 화면을 종횡으로 휘지揮之한다. 붓은 예술사 마디마다 푸른색으로 그려진 유명한 명화들, 수많은 공예품의 피부를 덮었을 반복적 패턴들을 재현한다. 그 중에는 그간 작가가 인간, 생과 죽음, 희생과 희망에 관해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탐구해왔던 아이의 두상이나 해골, 반핵, 심장 등 익숙한 기호들도 등장한다.
사각의 프레임 속에 거주하는 작품 단편들의 조합은 거대하고 단일한 형상을 만드는 대신 개별 단위들의 집적을 통해 통합적 구조를 완성해온 그의 오랜 조형방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각의 유니트들은 문뜩문뜩 떠오르고 유류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에서 태생하고 선택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 순서와 맥락도 없이 나열된다. 단편들은 개개의 요소들을 서사와 이미지의 연속성 속에서 균형있는 조화를 도출하려는 총체적 구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나아가 작가는 심미적 기능적 필요에 의해 옛 도자의 어깨, 기저부, 전 등 기器의 주변부에 자리했던 공예 의장적 무늬들을 화면의 중앙으로 옮기고 확대하고 해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체는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가장 정성스런 붓질로 실천된다. 작가는 세필이 만든 겹침과 머묾, 번짐을 확대해 퍼지고 흐르고 메우는 코발트의 다채로운 색채와 효과, 깊이, 변화를 끊임없이 증식시키고 채집한다. 이 선후와 맥락 없는 푸른 평면의 알레고리들을 절규하는 손, 기계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잠수부 마스크, 장화로 결합된 모뉴먼트 구성의 표피에도 동일하게 전개된다.
이처럼 김정범의 화면은 표면적으로 도자예술의 재료와 회화적 수법이 도출가능한 모든 물성을 동원해 완성하는 추상적 화면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을 평면 위에 푸른색 환영이나 망각을 재현하는 회화로 혹은 평면 위에 시각적인 무엇인가를 남기거나 물감과 붓질을 통해 표면의 질을 만드는 단순한 물성탐구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의 선택과 방법에는 전통재료와 수법,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역으로 전통이 간과했던 미시적이고 부차적인 영역과 의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그 가능성을 새롭게 발췌하는 최근 현대도예의 강한 의지와 방법이 강하게 읽힌다. 단순히 옛 것에 대한 감성주의적 경외나 감각에 의지하여 단지 전통의 재료와 수법, 형식만을 가져오는 기표적 예술은 너무나 위태롭다. 끊임없이 도자의 근본과 방법을 의문하고 그로인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 여기에 우리 사회가 해결하고 공유해야할 의미를 소신 있게 발언하는 푸른 그림여야만 의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범이 그려낸 청화는 오늘날 현대도예가 재현해야할 담론, 이미지를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하는 매우 도전적인 이미지다.


통인화랑, 2017년 3월 8일부터 2017년 3월 21일까지_<김정범>展
푸른 머리들
글_홍지수(미술학박사, 공예평론,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작가의 두상은 오래전 작가의 프랑스 유학시절 중세 고딕성당을 방문하여 다양한 조상들에 매료되었던 개인적 경험과 감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그간 연작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해온 소재다. 인간의 두상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조각사 전반에서 수없이 재현되고 있을 만큼 입체를 다루는 모든 작가에게 가장 기본적인 소재이자 도전과제이며 여전히 매력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상은 하나의 조형적 형상이기 이전에 실존의 표상이다. 얼굴은 다른 신체의 부분들과 달리 현존성과 정체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얼굴은 인간의 몸 부분들 중에서 가장 사회적인 텍스트이며 주체의 내면이 외부로 드러나는 발로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정범은 수많은 전작들의 부분이었던 두상을 다시 꺼내어 독립적 주제로 응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흙으로 자신과 닮은 형상을 흙으로 빚고 뜨거운 불을 쐬어 굳혀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에게 두상은 자신의 초상이자 인간의 실존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상으로 새롭게 알레고리화 하였다. 첫째, 두상의 표피를 입체적 화면으로 재해석하고 둘째, 두상을 새장처럼 열려있되 닫힌 아이러니한 실존의 공간으로 재해석하며 셋째, 다시 옛 도자 속에 존재했던 숱한 타자(여성)들의 얼굴에서 발견하게 되는 우리의 ‘얼굴’에 주목한다.
그들은 모두 세상엔 오직 푸른색만 존재하는 것 마냥 온통 푸르다. 이미지들은 청화(靑華)를 비롯해 대부분 옛 미술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예술품들을 모태로 한다. 주로 중국, 한국, 일본 등을 비롯한 옛 도자기를 장식했던 고전문양들로부터 델프트, 파이앙스 같은 유럽의 자기와 이슬람의 건축 장식들

Featured Artworks “김정범” 작가의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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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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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x 33.0 cm (8.7 x 13 in)

ceramic, cerami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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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x 65.0 cm (11.8 x 25.6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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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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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x 162.0 cm (51.2 x 63.8 in)

캔버스, cerami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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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