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 Chang Jee-Young 1975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당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도심 한 복판의 사거리나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 혹은 막 열차가 도착한 대합실에서라면 내가 누구 곁을 지나지는지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지영은 그 순간을, 그 특색 없는 순간을 붙잡는다. 또 한번,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캔버스에는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틀고 있거나 아예 몸을 등지고 있다. 간혹 정면을 응시하고 있더라도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다. 배경도 마친가지다. 그녀는 특정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특징들을 지워낸다.
작가는 그 누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밋밋한’ 순간을 맴돈다. 그녀에게 고개 숙인 사람의 옆 얼굴을 비추는 햇빛, 햇빛으로 드리워진 그림자, 그림자 끝의 발소리, 발소리 끝에 실려오는 웃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원형을 이룬다.
그 원형의 에너지는 좁은 수로를 흐르는 물이 된다. 잔잔한 수면 아래를 흐르는 물살의 그물이 그녀를 끌어당긴다. 그녀는 살짝 튼 고개의 각도에서 그 한 사람만의 단상이 아니라 나와, 당신과, 그녀 자신, 그리고 우리의 사색을 읽는다. 그녀는 물살에 저항하지 않고 차라리 잠긴다. 분명 언젠가 당신을 스쳐 지나갔고, 언제든 당신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의 흐릿한 형상이지만, 그녀의 그림이 순간적으로 휘발되지 않는 이유다. 장지영은 평범한 순간을 오랫동안 응시해왔고, 그녀의 그림은 마치 캔버스가 스스로 흘린 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경희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