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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작가

김복동 Kim Bockdong 1967

 김복동

장르

풍경화/ 한국의 사계,수평선 구도/하늘/유럽의 풍경, 인물화/구원시리즈/ 성화/빛/바로크미술 오마주, 인물화/ 신부시리즈/지고하고 아름다운 여인, 그 사이/명화 현대인

학력사항

  • 2019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석사)

평론글

Transmission salvatrice 구원의 전파

Immensité 거대함
김복동 작가는 예술적, 회화적으로 거대한 시도에 착수했다. 그는 특히 카라바지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나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대가들의 작품에 사로잡혔으며 또한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 의 작품들에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감동을 받은 대가의 작품들을 현재 우리의 시대에 재현해내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과거 대가들의 이런 강렬한 작품들을 접할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고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느끼게 만드는 것은 커다란 선의의 행동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종교적인 주제를 가졌다. 작가는 대가들의 작품을 아주 큰 크기로 섬세하게 다시 그려낸다. 그러나 그가 이 거대한 그림들을 그 자체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복사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작품에 그는 종종 나무로 된 판, 사각의 조각판자나 불규칙한 형태의 판자 같은 견고한 재료를 끼워 넣는다. 선택된 대가의 작품 이미지를 섬세하게 재현해낸 그 화면의 한 쪽에, 그렇게 공간적으로는 진짜 서로 연결된 흐름을 가진 그 부분에 시간적으로는 전혀 다른 현재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의 크기는 중요하다. 사이즈가 적당하지 않으면 사실 작품의 의도가 제대로 잘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의 유명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이 그림들은 그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인하여 미술사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신앙의 전파라는 측면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Double regard 중의적 시선
김복동은 크리스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금지되지 않기 위해, 혹은 개신교 교회에서 신자의 교화와 복음의 전파를 위해 받아들여지는 부분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서 작품 속의 이미지들과 모호하면서도 강한 관계를 맺는다. 그는 그리고 싶은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열정이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의 이 커다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미술사에 길이 남은 대가의 작품을 감상하듯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 옆에 그려진 현재의 인물로 인해 이것이 현대의 작품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작가는 그들 앞에 열려있는 진실의 길에 한 걸음 내딛게 할 수 있다. 성서의 주제들만을 사용하면서 금기를 범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감상자들에게 사색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작품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대가의 작품이미지 한 쪽에 시간 뿐 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같은 화면상에 그려진 현대의 인물은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향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는 작품들도 보인다. 그들의 시선은 늘 멀리를 향하며 한쪽으로 비껴 지나간다. 마치 눈앞의 장면들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점은 김복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이다. 개신교에서 이미지는 우상과 동일시되나, 성서의 메시지는 교리를 전파하는 중심이 된다. 이 주제들이 여기서 우상이 아닌 이미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의 역할을 한다. 그것이 그림 속에 그려진 성서 속 인물들의 에고처럼 함께 가는 이 인물들의 시선이 다른 방향으로 비껴가는 이유이다. 깊은 묵상의 순간 속에서 김복동이 보여주는 화면에 등장하는 오늘날의 인물들은 그러므로 놀랍다. 그는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신앙심의 작용을 이해하도록 한다. 그것은 바로 물질의 눈, 육신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보는 힘이다. 우리들 관객은, 우리를 닮은 그림 속의 인물을 본다. 그 인물들은 강렬한, 때때로 폭력적이거나 비극적인 성서 속 장면에 열광하는 대신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딴 곳을 보는 그림을 보도록 초대되었다. 우리 자신도 말하자면 곧 신을 향해 있는 그림이다. 왜냐하면 이 그림들이 우리의 내면의 시선을 이끄는 곳은 신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Souvenir vivant de la croix 십자가의 생생한 기억
김복동의 작품들은 보통 옹이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원목판재나 쪽매붙임한 나무판이 들어간다. 나무의 사용은 세 가지 이유에서 무척 중요하다. 첫 번째 이유는 조형성이다. 자연스럽고, 또 여기서는 자연 자체의 상징성 또한 갖춘 나무는 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념비적인 측면이다. 나무는 기독교인들에겐 십자가를 떠오르게 만들기 마련이다. 간혹 실제로 십자가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상징은 나무라는 재료 자체에 연결되어 있다. 나무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정신에 십자가가 내포한 신비를 떠올리게 한다. 세 번째는 구원과 상관이 있다. 아름다움의 측면, 기념비적 측면과 연관하여 나무라는 소재는 김복동 작가가 우리에게 성서의 메시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핵심요소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이미지는 볼 수 없으며, 거장의 그림으로도, 신비를 밝혀내고자 하는 사람도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의 재료인 동시에 상징성을 갖춘 나무만이 우리로 하여금 기억할 수 없는 태고적 믿음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도록 이끈다. 개인의 그림과 상징 사이의 이 부분이 김복동의 작품에 예술적인 동시에 구원적인 힘을 부여한다.
장 루이 쁘와트방 Jean-Louis Poitevin
철학박사. 소설가. 미술평론가. AICA internation의 멤버. TK-21 La Rerue의 주필 (www.tk-21.com)

빛이 현존하는 구원 회화
김복동 개인전: SALVATION 외치는 소리 빛으로 걷다.
2015.10.1~10.8, 금보성아트센터(서울) 외 전국순회전시

글|박정원 미술세계 편집장

김복동 작가의 그림에는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와 카라바조(Caravaggio)가 살아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 두 대가들이 의도하는 빛의 효과와 그 개념에 주목한다. 특히 촛불처럼 어둠이 빛 속에 스며드는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과 어둠속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빛이 강렬함을 선사하는 카라바조의 그림은 빛에 의한 고도의 연출력으로 인해 성경의 극적인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반면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루이스에 대한 일대기를 그린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를 본다면 김복동 작가가 의도하는 빛의 개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받을 고통은 지금 누리는 행복의 일부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와 섀도우랜드라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드교에서 세상은 천국에 도달하기 전의 여행지이며, 사람들의 삶 역시 어둠에 가려 빛의 존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그림자 상태라는 개념이다. ‘빛’은 세상에 없는 근원적인 기쁨과 선함이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김복동 작가의 빛과 어둠을 이해하는 기준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신앙이 기초가 된다.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의미하는 십자가가 현재까지 그리스도교의 표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김복동 작가가 연출한 화면에는 16세기 카라바조(이탈리아)와 17세기 조르주 드 라 투르(프랑스) 등 바로크 시대의 작가들이 이해하는 빛과 작가 자신이 이해하는 빛의 의미가 동일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시대를 꿰뚫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캔버스 화면에 거장의 작품 한 점을 모사하고, 그 옆에 분할된 면에 한국의 현대인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이 현대인들이 빛에 동참하는 태도는 무엇을 응시하거나 촛불을 들고 있거나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그의 작품 안에서 빛이 과거와 현재가 하나된 시공간에 현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된 대형 캔버스일 정도로 작가의 밀도 높은 필력에 기인한다. ‘Salvation’, 즉 ‘구원’은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명이다. 작품 〈Salvation 2014-6〉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아내에게 비웃음 당하는 욥〉(1593)이란 작품을 재현했다.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책임감을 내려놓으라는 강압적인 아내의 말에 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다할 것을 말하는 장면이다. 그 오른편에는 군복무 중 폭발물 사고로 한쪽 눈과 한족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복동 작가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선배 화가의 모습이 대비된다. 왼편에는 위를 향해 보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나무판이 보이는데, 성경의 마태복음 27장 46절에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당시 고통에 겨워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하고 마지막 절규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다른 작품 〈Salvation 2014-10〉은 카라바조의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1600~1601)를 그렸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 중에서 고난을 당하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며 부족한 인간의 모습을 가졌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죽음을 통해 실현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였다. 이 베드로 성인을 애도하듯 촛불을 들고 서있는 여인의 모습은 카라바조의 그림과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왼쪽 편에 캔버스 테두리 부분에 두껍게 원목을 대고 작은 선반을 여러 개 만들어 돌멩이들을 올려놓음으로써 평면과 입체가 혼재된 탈회화적인 시도를 주목할 만하다. 수직으로 설치된 12개의 돌멩이들은 열 두 제자들의 고유함과 그리스도 전례력을 안고 있는 열두 달을 은유적으로 건드리고 있으며 태초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교에 대한 기원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는 신앙심의 실체를 보는 듯하다.
이렇듯 김복동 작가의 작품에 담고 있는 구원이란 의미는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지만 스스로가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회화로서 보여주고 있다. 김복동 작가가 5~6세기를 초월하여 조르주 드 라 투르와 카라바조를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캔버스라는 시공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는 이들 역시 작가가 의도한 형이상학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창구에 서게 된다. 그 길목에는 부활과 맞닿아 있는 고통과 환희가 존재한다. 이 역설적인 진실을 신앙인이자 화가의 숱한 붓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연을 마땅히 누려야 할 이유
김복동은 일찍부터 인물화 작가로 상당한 화명을 얻고 있는 작가이다. 탄탄한 데생의 기량을 기반으로 한 인물화 표현에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터였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인물화는 쇠퇴 일로에 접어들고 있다. 현대미술의 주요 명제가 脫일루젼의 문제로 수렴되었으며, 그러한 수렴은 직접적으로 인물화 장르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각종 시각 미디어의 다양한 기능들은 무엇보다 사람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변조 및 유통을 하는 데 있어 가공할 위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인물화라는 것은 기껏 인물 사진을 놓고 사진 이미지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거나 그보다 못한 퇴조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난이도에 비해 빛이 나지 않고, 속된 말로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물화는 이제 미술계의 3D가 된 느낌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인물화에 도전하고 있는 작가의 의지가 가상하게 느껴진다.
사실 김복동의 인물화는 대상을 인물로 설정만 했을 뿐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적 현실주의 혹은 비판적 현실주의에 가깝다. 작가라면 누구나 당대 사회와 시대의 문제를 화폭에 담고자 하는 소망과 야심을 품은 바 있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러한 꿈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화폭 위에 실현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들을 바라보면서 고발과 비판을 가하는 비판정신이 작가에게 올곧게 살아 있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대하 장편이라 할 만한 연작에 착수하고 싶어 하는 작가는 자못 야심적이기까지 하다. 청년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작가의 근성과 자세로 미루어볼 때 그러한 소망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예견된다.

시대는 거대한 차원의 이야기보다는 작고 소박한 차원의 이야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작가 입장에서는 敍事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하고 느끼는 것 모두가 그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고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면 그것도 그림이 될 수 있고, 또한 들판의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장면들 앞에서 느끼는 정서 역시 또한 그것대로 그림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따라 감동이 오는 성서의 내용 역시 지나칠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아직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성서 속의 주역들을 소재로 하여 많은 연작들을 야심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는 삶이라는 범주 안에서 어떤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는 전과 다르게 풍경화에 많은 역점을 두고 있다. 鬪士까지는 아니어도 현실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가 입장에서 풍경화는 그의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그림들의 성과를 희석시키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逆도 예상된다. 회화 자체의 밀도와 완성도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작가의 외향적 시선을 반영한 현실주의적 그림들은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런 도상들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어둡고 무거운 화면의 내용들이 이지적으로는 해석되고 소통된다 하더라도, 정서적인 만족으로까지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연애시를 쓸 수 있겠냐고 자문한 아도르노의 말처럼 대조적인 양자가 한 작가의 작품세계로서 공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자유 의지에는 애당초 그림들에 무슨 구분을 설정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다. 삶의 생생한 투영만이 회화의 생명일 뿐, 어떤 이데올로기 문제에 얽매여 있는 것은 지성의 건전한 역할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술은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도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작가의 그림처럼 작가의 풍경화와 인물화는 분위기 또한 사뭇 다르다. 후자가 아무래도 어둡고 딱딱한 분위기를 주기 쉽다. 하지만 전자는 은총의 빛으로 충만한 대자연의 자태가 생기 있고 활달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풍경화에서는 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 스트레스 같은 흔적이 보이지 않고, 그야말로 자신의 영혼과 정신, 육체가 조화되어 율동적인 필치와 감각적인 색조들, 잘 짜여진 구조 등이 유미적 완성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가가 우리의 산하를 몸소 누비며 체험한 그 느낌을 가감 없이 담고 있음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자기가 서 있었던 곳의 공기 청명도와 습도까지도 전해주는 생생한 묘사라 할만한 필치는 무르익을 대로 익어 있는 것이다.

종종 작가들 가운데 다양한 장르나 양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 불안감을 표명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더러는 작가의 확고한 이미지, 즉 브랜드와 같이 작가의 정체성을 말해줄 이미지가 희석될 것을 염려해서이고, 더러는 어떤 하나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가야 할 에너지의 고갈에 대한 반증으로 오해될 것을 염려해서이다. 작가에 따라서는 일리가 있는 우려일 수 있다. 아무래도 오늘의 사회적 환경에서는 작가의 양식이나 장르가 곧 작가의 이름으로 통하는 것이 보통이다. 집중의 원리는 산업현장에서나 예술현장에서 고루 적용되는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에게는 그것이 杞憂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아도르노의 자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의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참상의 목격자나 체험자가 연애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는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연애시를 써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을까. 분명히 작가는 우리의 고달픈 현실을 목격하면서 더더욱 자연을 즐기고 아울러 사랑에 빠져야 할 이유가 있음을 몸소 실천할 것이다. 아니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재 언 (미술평론가)

Featured Artworks “김복동” 작가의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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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변의 추억
세느강변의 추억

80.3 x 19.0 cm (31.6 x 7.5 in)

캔버스, 오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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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한라산의 봄
한라산의 봄

72.7 x 53.0 cm (28.6 x 20.9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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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sailing2021-13
sailing2021-13

116.7 x 91.0 cm (45.9 x 35.8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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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sailing2021-11
sailing2021-11

100.0 x 80.3 cm (39.4 x 31.6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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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sailing2021-9
sailing2021-9

91.0 x 72.7 cm (35.8 x 28.6 in)

캔버스, 오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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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김복동

Bio

  • 2019 제14회 개인전/지고하고 아름다운 여인, 그 사이 (서울/세종갤러리 초대전)
  • 2021 기후위기 시대 멸종위기종을 다시 보다 전 /금보성아트센터 외
  • 2021 콩세유미술관개관초대전(콩세유미술관)
  • 2021 한.중 동상(同裳) 한.중 현대미술교류전(산둥미술관,주칭다오총영사관)
  • 2021 한.중예술교류제'치유.극복.상생-서울&쓰촨의 예술로 이루다(한국예총)
  • 2019 여수출향작가 초대전(여수엑스포갤러리)
  • 2016 올해의 우수작가상 수상(금보성아트센터)
  • 2014 올해의 작가상 규랑상 수상(규랑문화재단)
  • 2002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우수상 및 특선2회
  • 1997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 1986 한국수채화 공모전 특선 2회 입선4회
  • 2021 코리아 아트페어 (코엑스)
  • 2021 핸드메이드 & 파인아트페어 (벡스코)
  • 2005 화랑미술제 예술의 전당 외 아트페어 16회 참가
  • 사법연수원,서울지방법원고양지원, LIG,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한국기업데이터, 여수시,무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