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헌 김영삼 KIM Youngsam 1959
탐매행(探梅行)과 우송매(愚松梅)의 의미
- 최병식 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수
‘탐매행(探梅行)’ 최근 10여년 우송헌 김영삼의 작업을 함축한 단어이다. 그가 찾아 헤맨 매화들은 그의 고향 전넘 진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을 망라한다. 진도의 소치매(小癡梅)와 운림매(雲林梅), 연동마을 고산매(孤山梅). 화엄사 길상암의 야매(野梅), 대흥사 두륜매(頭輪梅),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선암사의 백매와 홍매, 담양 지실마을의 아룡매(臥龍梅), 계당매(溪堂梅). 독수정 주변의 독수매(獨守梅), 환벽당의 담장매, 백매를 비롯하여 순천 송광사의 송광매, 야매, 350~650년이 된 50여 그루의 매화가 있는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와 섬진강 줄기인 ‘수류화개(水流花開)’를 이루는 남방지역의 대부분을 섭렵하였다.
매화심취의 동기는 우연히 일간지 기사에서 발견하고 밤을 새워 찾아간 산청 남사마을 분양매(汾陽梅)와의 인연이다. 분양매는 수령 650년에 달하는 분양고가의 명매이다. 우송헌은 어렵게 찾아간 분양고가에서 매화 한 송이가 수백 년이 된 고목나무에 피어있는 장면을 보는 순간 벅찬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 고매는 수령이 다하여 안타깝게도 2006년 고사했고 새가지가 자라고 있다.
물론 우송헌은 청년시절부터 호남 문인화의 거봉 금봉 박행보 선생에게 사사하면서 사군자를 즐겨했다. 그러나 사군자의 실물에 대한 학습이기 보다는 대부분 화법이나 선배들의 작품을 근간으로 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50대 초반, 작가로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기에 분양매의 발견은 그의 예술세계에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뉴욕의 전시에도 참가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우송헌은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게 된다. 광주화단의 전통적 관습에 머물렀던 그의 시각은 당대미술의 명멸하는 실험사조와 작가정신의 본질적인 문제에 많은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였고 작품에서도 추상작업이나 원색을 색면으로 도입하는 작업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정한 본질, 자신의 관점과 작업방식으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우연히 산청의 분양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군자 그 중에서도 화보에 의하여 정형화된 소재가 아니라 실체로서 다가온 매화의 매력에 도취된 우송헌은 이후 매화를 찾아 ‘탐매행(探梅行)’작가로 변신한다. 2002년 나인갤러리, 2004년 한가람미술관, 2007년 학고재 전시에서만 해도 「터」, 「분매도」등 소수에 그치고 있는 묵매작업은 2011년 로터스갤러리전에서 과반수이상의 작업이 묵매화로 구성된다. 중국의 페이갤러리에서는 대부분 작업을 ‘새벽매화’시리즈로 선보이게 되면서 그간 탐매여행에 대한 보고를 시작한다.
그가 오랜 동안 시도해온 매화 찾기와 읽기, 시각언어화를 거친 심상적 해석과 표현과정은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은 그가 당대미술계, 특히 문인화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철저한 실제 사생과 현장작업을 병행하는 과정을 통해 지극히 관념적인 인식이나 개자원화전(芥子園 畵傳) 이후 정형화된 구도, 필세, 선배작가들의 전범으로 형식화된 스타일로부터 일탈했다는 평가이다.
작업은 사생 성격과 ‘새벽매화’와 같이 자신의 시각으로 유형화되어지는 스타일로 나뉜다. 자유로운 선묘, 순지의 독특한 감각이 반영된 모필과 농담의 변화, 속도와 깊이의 맛을 머금은 필선과 먹의 쓰임 등은 그의 특징이다. 필선에서는 낭만적인 멋의 결구가 있다. ‘묵매유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 그의 매화필은 명쾌하면서도 과감하다. 필선의 감각과 가지의 결구가 서예의 맛을 연상케 하면서 파격이 있지만 세필의 끝은 감성적이다.
‘한향춘몽(寒香春夢)’에 비하여 ‘새벽매화’는 여러 번에 걸쳐 담묵으로 배색을 처리하고 백매와 홍매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시각의 작업이다. 새벽에 여명을 배경으로 동이트기를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눈과 추위를 견뎌낸 매화의 상징적인 의미가 오버랩 된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여백을 중시해온 전통 문인화의 사상과 형식으로부터 새로운 시각의 배경처리는 한글화제와 함께 그만이 갖는 묵매의 특징을 형성한다.
어릴 적 동네의 냇가나 호수에서 놀다 강변으로 다시 망망대해의 바다로 나가게 되는데 마지막에는 다시 동네의 냇가나 호수로 돌아오게 되는 ‘회귀’를 생각할 수 있다. 매화를 찾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런 비유와도 연계되는 것 같다.
우송헌의 ‘탐매행’은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말하고 있듯이 ‘회귀’라는 말로도 쉽게 해석된다. 그 역시 한동안 당대미술의 다양한 트랜드나 이슈에 대하여 많은 고심을 거친 적이 있다. 추상성, 기학적인 화면구성과 소재의 확장, 다양한 재료의 텍스츄어 등을 구사하면서 실험을 거쳤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최근 관심은 진정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의 실현을 통한 당대성의 획득이었다.
‘우송매(愚松梅)’는 일정기간 그의 다양한 실험을 거치면서 도출하게 된 전통적 방식의 터득을 통한 새로운 도전이다. 그의 ‘묵매회귀’는 한국 미술계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박물관학적인 가치로 밀폐되고 굳어져온 몽상적 사군자형식을 일탈하면서 자연의 실체, 그 실체로부터 진행되는 응물상형(應物象形)의 심상적 경지를 터득해가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통화단, 서예계의 매너리즘이 수없이 비판되어왔지만 그 화답은 미미했다. 특히 시각예술분야와는 전혀 다른 코드로 형성되어온 문인화단의 독자적 행보는 더욱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우송헌의 탐매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시도는 물론 아직 사생과 형상, 감성의 작업들이 관념과 의경(意境)의 아우라를 내품은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당대 문인화의 가장 큰 과제인 관념적 타성과 정형화를 과감히 일탈하면서 원천적인 매화의 실체탐구와 그 본질적인 재해석으로 ‘당대성(當代性)’에 대한 접목과 대안모색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